(중앙선데이 기사중..) 이보다 한 술 더 뜨는 분으로 무카이야 미노루라는 뮤지션이 있다. 1980년대 큰 인기를 끈 퓨전재즈밴드 ‘카시오페아’의 멤버였던 그는 열성적인 철도 오타쿠로, 일본 전국 각 역의 특징과 역사는 물론 열차 발차음(열차가 출발할 때 나오는 음악)을 다 외우는 것으로 유명했다. 급기야 본인이 직접 발차음 제작에 나서 8개의 역에 정차하는 교토의 특급 지하철 노선 발차음을 만들었다. 각 역의 특징을 살린 여덟 개의 발차음은 전체를 이어 들으면 한 곡의 완결된 음악이 된다고 하니, 이쯤 되면 ‘국가적 덕후질’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가장 맘에 드는 멤버는 이시영(27)이다.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주변 연예인들까지 “형부” “처제” 식으로 불러대는 통에 왠지 ‘거대한 집단 사기극’ 같은 느낌을 주는 이 프로에서 이시영만 유일하게 꾸미지 않은(것 같은) 썰렁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시영이 보기 드문 ‘건담 덕후(매니어를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를 응용한 인터넷 조어)’라는 사실도 호감의 이유 중 하나다. 인생에 별 도움 안 되는 것에 빠져 주말 내내 씻지도 않고 방바닥에 눌어붙어 있어 본(그러다 일요일 밤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에 소스라쳐 본 적 있는) 인간들끼리 느끼는 어떤 동질감이랄까.
진짜 ‘건담 덕후’들 사이에서는 요즘 이시영의 건담 사랑이 설정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쟁이 오가는 모양이다. 그러나 만약 설정이라 해도 이시영 혹은 그의 기획사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칭찬이라도 해주고 싶다. 왜냐.
한국보다 연예시장의 규모가 큰 일본에서는 연예인들이 ‘나 오타쿠요’라고 선언한 후 ‘덕후질’에서 쌓은 내공을 토대로 인기를 이어가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로보돌(ロボドル•로봇 매니어 아이돌), 데쓰돌(鐵ドル•철도 매니어 아이돌) 등의 단어가 공공연하게 사용될 정도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6년 싱글앨범 ‘브릴리언트 드림(Brilliant Dream)’으로 데뷔한 가수 나카가와 쇼코(24)다.
그는 데뷔 때부터 자신이 애니메이션 또는 특촬물(특수촬영 기법으로 만들어진 ‘울트라맨’이나 ‘가면라이더’ 같은 작품)의 오타쿠임을 밝히면서 각종 버라이어티에 나와 해박한 지식을 뽐냈다. 애니와 특촬물에 대한 각종 정보에 자신이 직접 만든 작품까지 선보이는 그의 블로그를 방문한 사람은 5억 명이 넘는다.
이보다 한 술 더 뜨는 분으로 무카이야 미노루라는 뮤지션이 있다. 1980년대 큰 인기를 끈 퓨전재즈밴드 ‘카시오페아’의 멤버던 그는 열성적인 철도 오타쿠로, 일본 전국 각 역의 특징과 역사는 물론 열차 발차음(열차가 출발할 때 나오는 음악)을 다 외우는 것으로 유명했다. 급기야 본인이 직접 발차음 제작에 나서 8개의 역에 정차하는 교토의 특급 지하철 노선 발차음을 만들었다. 각 역의 특징을 살린 여덟 개의 발차음은 전체를 이어 들으면 한 곡의 완결된 음악이 된다고 하니, 이쯤 되면 ‘국가적 덕후질’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반농반예(半農半藝•절반은 낙농, 절반은 연예활동)’라는 기상천외한 컨셉트를 내세운 소녀 아이돌 그룹도 있다. ‘컨트리 무스메(カントリ-娘)’라는 이 그룹은 ‘모닝구 무스메’를 키운 업프론트사 소속으로, 기획사에서 운영하는 홋카이도의 하나바타케 목장에서 일하면서 홋카이도 한정으로 음반을 출시하는 등 연예활동을 한다. 평소에는 농장에서 풀을 베고 소나 말을 키우다 관람객이 찾아오면 말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들판에서 쇼를 보여 주는 식이다.
이시영의 ‘덕후 이미지’가 앞으로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지 알 수 없지만 무명 배우가 이만큼의 화제를 모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한국에도 이런 ‘덕후 연예인’들이 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심심한 인터뷰를 한 시간 넘게 끌고 있을 바에야 만화나 기차 이야기라도 열띠게 나눌 수 있다면 훨씬 즐거울 테니.
--------------------------------------------------------------------------------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가요•만화 등을 담당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 ‘스마프(SMAP)’를 향한 팬심으로 일본어•일본 문화를 탐구 중이다.